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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전후의 유성
1910년 일제에 의한 병탄 후 식민정책이 개시되면서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에 의한 우리나라 최대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단행되었다. 이때 종래의 회덕군·진잠군과 공주군의 일부를 합쳐서 대전군으로 신설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의 대전군을 보면, 회덕군의 외남(外南)·내남(內南)·유등천(柳等川)·서(西)·동(東)·주안(周岸)·북(北)·천내(川內)·일도(一道)·탄동(炭洞)·구즉면(九즉面)의 13개 면, 진잠군의 북·상·동면의 3개 면, 공주군 현내면(懸內面)의 장현(長懸)·봉암(鳳岩)·신흥(新興)·장대(場垈)·상대(上垈)·서성(西城)·운암(運岩)·가락(佳樂)·남작동(南作洞) 일부와 반포면의 동촌(東村)·봉성(鳳城)·수남(水南)·어두우니[魚韻]의 4개 리와 명탄면(鳴灘面)의 박산(朴山)·계봉(鷄鋒)의 2개리, 연산군 두마면의 광산(光산)·동서암(東西岩)의 2개 리와 식한면(食汗面)의 정장리(丁壯理) 일부와 벌곡면(伐谷面)의 조동리(鳥洞理) 일부를 병합하여 대전군으로 신설하고, 대전군 밑에 대전, 외남, 산내, 유천, 동, 북, 유성, 탄동, 구즉, 진잠, 기성의 12개 면을 관할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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